2014/07/16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 1927년… 그 시절로의 비행

어제 미국에 있다가 오늘 프랑스에 나타난다는 것은 1927년 5월 20일까지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항공 우편기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1902~1974)는 이날 오전 연료 계기판도 통신 장비도 없는 은색 비행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The Spirit of St. Louis)'을 타고 뉴욕을 이륙해 이튿날 오후 파리에 착륙했다. 혼자서 논스톱으로 5815㎞(33시간 30분)를 날아 처음 대서양을 건넌 인간이었다.

앞선 9개월 동안 조종사 11명이 대서양 횡단을 시도하다 사망했다. 호리호리한 스물여섯 살 청년 린드버그는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해 생명을 건진 횟수가 많다(4회)는 것 말고는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었다. 뉴욕~파리의 최단 직선거리도 알지 못해 공립 도서관에 가서 지구본 위의 거리를 줄자로 쟀을 만큼 준비도 미덥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연비를 극대화하려고 불필요한 짐을 제거했다. 샌드위치 5개와 물 0.95ℓ만 실었고 휴대용 지도는 여백까지 잘라냈다.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이 5월 21일 파리의 풀밭 활주로에 내려앉자 군중은 린드버그를 조종석에서 끌어내린 다음 약탈한 전리품처럼 떠메고 다녔다. "마치 사람들 머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다에 빠져 죽는 것 같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언론은 구세주의 재림이라도 본 양 흥분했다. 나흘 동안 미국 신문들은 이 단독 비행에 대한 기사를 25만 건 실었다. 린드버그가 받은 편지는 350만 통을 넘었는데 대부분 여자가 보낸 것이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월트 디즈니라는 젊은 만화가가 영감을 얻어 생쥐가 조종사로 등장하는 단편 만화 '플레인 크레이지(Plane Crazy)'를 만들었다. 이 생쥐가 바로 미키다. 린드버그는 귀국길에 영국 버킹엄 궁에 초대됐는데 국왕 조지 5세는 비행 중 소변을 본 방법과 횟수, 버린 장소를 캐물어 영웅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어느 계절이 시대를 규정할 때가 있다. 미국의 1927년 봄이 그랬다. 뉴욕은 런던으로부터 세계 최대 도시 자리를 빼앗았다. 세계 물자 생산량의 42%를 미국이 담당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은 자동차, 냉장고, 라디오, 전화기, 선풍기 등으로 광채를 발했다. 다른 나라는 한 세대 이상이 지나서야 이런 생활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영국 전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전화기를 미국은 매년 새로 설치했다.

그해 증권시장은 호황을 누렸고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하루 4시간만 일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낮잠으로 보냈다. 최악의 홍수가 미시시피 강 유역의 제방을 "몸에 꽉 끼는 셔츠의 단추처럼 터뜨리자" 허버트 후버(후버댐으로 기억된다)가 해결사로 투입됐다.

갱단 두목 알 카포네는 시카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러시모어 산에 위인 4명의 거대한 두상을 새긴다는 엉뚱한 사업도 1927년 시작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베이브 루스가 1.53㎏의 묵직한 배트를 들고 홈런 최고 기록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땅콩 장사도 고함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지켜봤다. 린드버그가 양키스타디움에 오기로 한 날, 루스는 "선물로 홈런을 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시즌이 끝났을 때 홈런 60개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작가 빌 브라이슨 말마따나 "그해 여름은 굉장히 이정표적인 계절이었다." 지구의 무게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기억되는 브라이슨은 이 논픽션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모험과 무모한 낙관주의,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탐나는 재치와 입담은 여전하다. 베이브 루스처럼 미국이 '풀 스윙'을 한 87년 전 여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원제 'One Summer: America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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